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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감독 : 린 램지

관객수 : 47,206

틸다 스윈튼 (에바)

에즈라 밀러 (케빈)

 

 

 

이번에 소개할 영화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에 나오는 케빈은 악랄하고 잔혹한 꼬마로 보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 홀로 집에시리즈의 케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죠. 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명의 케빈이 벌이는 장난의 시작은 누구에 의한 것이었는지, 어떤 이유에서 시작한 것인지 말입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에즈라 밀러가 연기한 케빈은 더 이상 잔혹하고 악랄한 꼬마로만은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아래에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과 의견을 여러분과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줄거리

 

토마토 축제를 즐기는 에바의 모습으로 영화는 첫 장을 엽니다. 정열적인 빨강색이 그녀의 온몸이 토마토에 의해 뒤덮여지고, 사람들에 의해 들어올려지는 모습은 그녀가 여행을 만끽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당시 여행가로 책을 집필하기도 했으며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자유분방함과 열정이 곧 에바였습니다. 하지만 프랭클린을 만나고 임신을 하게 되면서 삶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에바는 임신, 출산, 가정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정서적으로 말이죠. 그녀는 임신을 구속으로 여깁니다. 배가 부른 자신의 모습에 전혀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고, 다른 임산부들과 달리 몸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녀가 임산부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장면은, 후일 교도소에 들어간 케빈을 만나러 가는 길과 오버랩 되기도 합니다. 케빈을 임신한 순간부터 그녀는 교도소에 갇힌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낳고 난 후에도 고통은 계속 됩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데 요령이 없었던 에바는 지쳐버립니다. 유모차를 끌고 공사장으로 가 소음 속에서 울음 소리를 잊어보려는 그녀의 모습은 압권입니다.

 

 

 

아이는 자라서 이제 또 다른 이유로 에바를 괴롭힙니다. 울음 소리는 사라졌지만 이제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말을 할 줄 알면서도 ‘Mommy’라는 단어는 죽어도 내뱉지 않습니다. 공을 굴리면서 서로 주고 받는 에바의 놀이도 무시해버립니다. 케빈의 반항은 이뿐이 아닙니다. 음식을 식탁에 흩뿌려놓고, 에바가 기저귀를 갈아주자마자 바로 똥을 싸버리고, 아빠인 프랭클린에게만 살갑게 대합니다.

 

그러던 사이 케빈에게는 실리아라는 여동생이 생깁니다. 하지만 케빈의 악행은 더욱 심해집니다. 자신을 짐덩이, 구속으로 여겼던 에바가 여동생 실리아는 살갑게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한층 더 악랄해지죠. 케빈이 실리아가 눈을 잃게 만들고, 리치를 잘근잘근 씹어먹는 모습은 토가 나올 정도로 역겨웠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프랭클린과 활 쏘는 훈련을 했던 케빈은 자신의 16세 생일을 자축하기 위한 계획을 꾸밉니다. 바로 엄마인 에바를 제외한 가족들을 모두 죽이고, 학교 체육관에서 친구들을 활로 쏘아 죽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에바는 살아남았는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항상 살갑게 대해주던 아빠 프랭클린, 여동생 실리아는 끔찍하게 살해 했으면서 평생을 증오했던 에바는 살려두었는가 입니다.

 

여기까지가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 대한 줄거리입니다. 

 

 

 

2.   영화 해석

 

-      케빈은 악마인가?

 

 에즈마 밀러의 눈빛 연기는 케빈을 악마로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케빈을 악랄한 아이로 몰아간다면 이 영화는 별 내용 없는 사이코패스 영화에 불과할 것입니다.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마지막 장면에서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에바를 향한 케빈의 동정 어린 눈빛을 말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에바와 케빈은 교도소에서 면회 시간을 갖습니다. 사건 이후 정확히 2년이 지난 날이었죠. 에바는 케빈에게 물어봅니다. 이제 충분히 생각을 했을 테니, 이제는 왜 그랬는지 말해달라고 말입니다. 케빈의 답은 담백하고 차가웠지만 그 어느 때보다 절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는다고 생각했는데 ...”

 

 영화 내내 풀어지지 않았던 케빈의 눈빛은 이때 딱 한번 온순한 사슴 눈망울이 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케빈은 엄마의 사랑을 원했던 아이였던 것입니다. 자신을 짐덩이로만 받아들이는 엄마에게 관심과 사랑을 바랐던 것입니다. 관심을 받기 위해 사고를 치고, 말을 못하는 척 하고, 똥오줌을 가릴 줄 알지만 기저귀를 벗지 않았으며, 에바가 보는 앞에서 자위행위를 멈추지 않고, 동생을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에바만 살아남았다는 부분에 집중해야 합니다. 케빈이 그 누구보다 사랑 받고 싶었던 존재는 바로 엄마였습니다. 아빠와 여동생이 없어져야만 자신의 엄마의 관심을 더욱 끌 수 있었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요.

 

 

-      빨간색과 파랑색

 

 영화의 첫 시작은 토마토 축제였고, 그 이후의 장면은 빨간색 페인트가 흩뿌려진 에바의 집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여러 장면들이 빨간색으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단적으로 에바는 레드와인만을 마시며, 케빈이 영화에서 먹는 음식들은 딸기잼을 바른 빵들이었습니다. 장난을 칠 때도 딸기잼이었죠. 그렇다면 빨간색이 의미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케빈의 저지른 악행, 살인, 피를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빨간색은 에바의 성질을 드러내는 색이라고 생각을 굳혔습니다. 물론 이는 제 사견입니다.

 

 에바는 토마토 축제의 빨간색을 즐깁니다. 프랭클린과 거리를 거니며 키스를 하고 행복하던 시절도 붉은 빛으로 처리되고 있죠. 사건 이후 에바는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힘들어졌고, 슈퍼에서 장보는 것조차 힘들어졌습니다. 피해자들의 가족이 마녀라고 욕을 해댔고, 막무가내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에바가 슈퍼에서 장을 보다 피해자의 가족을 마주치자 선반에 등을 기대고 급하게 몸을 숨기는 장면이 있습니다. 선반에는 토마토 소스가 가득합니다. 그녀는 사건 이후에도 오로지 자신의 속성을 잃지 못했고 그곳에서만 안정감을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후에도, 케빈을 낳은 후에도 빨강이라는 속성을 단 한번도 지운 적이 없던 그녀는 집에 칠해진 빨강 페인트칠을 벗겨내기 시작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도소에 들어간 아들을 위해 방을 어린 시절 케빈의 방처럼 꾸며놓습니다. 파란색으로 벽을 칠하고, 로빈후드 책을 선반에 올려놓고 말입니다. 에바도 결국은 케빈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서로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었던 둘은 교도소 면회장에서 뜨거운 포옹을 나눕니다. 어두운 교도소 색감에 대비된 탓일까 그들의 포옹은 가장 따뜻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 이외에 눈길을 사로잡은 장면들

 

 영화 기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탓에 제대로 된 해석을 내놓지 못한 장면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돌려보면서 제작자의 의도를 이해한 장면들도 꽤 있었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몇 개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12:00이 깜빡이던 시계입니다. 에바가 케빈이 임신하던 날 시계는 12:00에서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는 “ : “에 초점을 맞추더니 “ : “의 초점이 여러 개가 되면서 마치 세포 분열에 의한 생명 탄생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시계라는 사물에서 생명의 탄생을 암시하는 장면을 나타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물론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케빈이 사건을 저지르기 직전 시계를 비추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때 역시 시간은 12:00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12:01로 시간이 바뀌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이 장면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케빈과 에바의 유사한 행동입니다. 이 역시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면회장에서 케빈은 손톱을 물어 뜯어 10개를 가지런히 탁자에 내려놓습니다. 이후 장면에서 에바는 피해자의 가족이 깨놓은 달걀로 음식을 해먹었고, 음식에서 나오는 달걀 껍질을 가지런히 줄 맞춰 접시에 내려놓습니다. 에바가 케빈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에 대한 복선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의미가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3.   총평

 

케빈에 대하여라는 작품을 우연한 기회에 접했고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각, 청각적인 자극이 아닌 가슴이 울리는 느낌 말이죠.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 더 많은 의미를 끌어내지 못한 점이 아쉬웠을 뿐입니다. 못해도 10번은 넘게 돌려봐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의 기법, 작품성, 메타포적인 요소도 눈길을 끌었지만,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말입니다. 한국의 경우 가부장적인 가정이 많고, 임신을 여자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임신을 하면 퇴사해야 하고 전업주부가 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에바가 케빈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던 이유는 어쩌면 에바 역시 사랑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신이라는 혹독한 과정을 혼자서 겪어내야 했고, 남편은 우는 아이를 달래지 못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고, 케빈을 의심하는 에바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으라고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에 사랑과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던 에바가 케빈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지 못한 것은 당연한 전개처럼 느껴집니다. 우리의 가정, 사회는 과연 건전한지 돌아봐야 합니다. 여러분 옆에서 웃고 있는 사람이 결핍에 찌든 사람일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