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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켄슈타인 >

메리 셸리(Mary Wollstonecraft Shelley, 1797~1851)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리는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형상이 있다. 초록색 얼굴을 하고 있으며, 여러 조각의 살점들로 이어진 형태이고, 머리 옆 쪽에 나사가 박혀 있는 괴물이다. 흉측한 형상은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괴물로 인식하게끔 만들었다. 설령 그것이 선한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과 같이 감정을 느끼고, 지적 능력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소설을 직접 접해보지 못했던 필자 역시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을 해치는 흉측한 괴물로만 알고 있었다. 또한 우리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괴물의 이름 역시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다. 괴물을 만든 인간의 이름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다. 빅터는 자신의 만든 생명체에 이름조차 부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을 공유하고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프랑켄슈타인을 뮤지컬로는 접해보았지만 보다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고,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1.     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의 오만함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어렸을 적부터 마그누스, 코넬리우스 아그리파, 파라켈수스와 같은 학자들의 불로장생 영약, 악마나 유령을 불러내는 법 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과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대학에서도 계속되었고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과학도로 성장한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인류를 위해 활용하고자 했다. 그에게 주어진 과업은 바로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뮤지컬에서 그는 유년기에 겪었던 어머니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또한 자신을 이해해주던 유일한 친구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친구의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그의 과학적 열정과 신념이 주요한 변수였던 것으로 그려진다.  

 

 젊었을 때, 나는 나 자신이 굉장히 큰 일을 할 운명이라고 믿었다네. 나는 감성이 풍부했네. 하지만 빛나는 성취에 필요한 냉철한 판단력도 지니고 있었네. 이런 자긍심은 다른 감정들이 억눌릴 때에 나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었지. 나는 무용한 슬픔에 젖어. 인류를 위해 유용하게 쓰일 능력들을 썩이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했던 거네. 내가 완성한 그 일. 그러니까 감정과 이성을 지닌 존재를 창조해낸 일을 생각하면 나 자신을 평범한 과학자로 생각할 순 없었지. 하지만 내가 과학자로서 첫발을 내디딜 때, 힘을 북돋아주었던 그러한 생각 때문에 지금 내가 먼지 구덩이 속에 깊숙히 처박힌 거네. 나의 모든 생각과 희망은 수포로 돌아갔고, 전능함을 갈망하던 대천사처럼 나는 영원한 지옥에 갇히게 된 거지. (283쪽)

 

 천재 과학자 빅터는 결국 시체에 생명체를 불어넣는 실험을 성공한다. 하지만 결과물은 성공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기에 자신의 피조물로부터 도망치는 선택을 한다. 생명의 창조자로서 신의 영역에 한걸음 내디뎠지만, 그와 동시에 엄청난 책임의 무게를 떠안아야 했던 것이다. 자신의 피조물을 피하고 잊으려고만 했던 그의 선택은 화살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2.     선한 존재로서의 괴물 프랑켄슈타인

 

 지금부터는 빅터가 만들어낸 생명체를 괴물이라고 지칭하고자 한다. 창조주로부터 버림받은 피조물이 어떤 이유에서든 첫 번째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희생자는 빅터의 동생인 윌리엄이었다. 그러나 빅터가 불어넣은 생명의 숨결이 본질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었다. 괴물은 인간처럼 선한 존재였으며 감정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생명체였다. 그렇다면 선한 존재로서 태어난 생명체가 왜 괴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괴물도 처음에는 인간에게 다가가고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기도 했으며,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과 대화를 하며 마음의 안식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볼 수 있는 능력만 갖춘 사람이라면 모두들 괴물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폭력을 행사하고 심지어는 죽이려고 시도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단지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뿐이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종차별, 장애인 혐오, 성 소수자 혐오와 같은 다양한 차별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누군가의 본성을 알고자 하는 노력 없이 괴물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추한 것들을 미워하지. 그러니 어떤 생명체보다 추한 내가 얼마나 혐오스러울까! 그대, 나의 창조자여, 하물며 당신까지도 자신의 피조물인 나를 혐오하고 멸시하고 있소. 그래도 그대와 나는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풀릴 끈으로 묶여 있소. 당신은 나를 죽이려 하지. 어찌 생명을 가지고 그렇게 놀 수 있는 거요? 나에 대한 의무를 다하시오. 그러면 나도 당신과 다른 인간들에 대한 내 본분을 다하겠소. 당신이 내 조건을 수락한다면 난 순순히 인간들과 당신의 곁을 떠나겠소.(125쪽)

 

 인간들의 홀대와 학대, 창조주로부터의 버림은 단번에 괴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괴물은 빅터에게 오히려 조건을 제시하며 협상을 시도한다. 자신과 같은 형상을 한 여자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응해주기만 한다면 인간이 살지 않는 조용하고 황량한 곳으로 떠나 살겠다는 것이었다.

 

진정하시오! 부탁하건데, 부디 저주받은 내 머리 앞에 증오심을 토해내기 전에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내가 겪는 이 정도의 고통으로는 부족해서, 나를 더욱더 비참하게 만들 작정이오? 삶은, 비록 고뇌 덩어리라고 해도 내겐 소중한 것이오. 그러니 난 삶을 지킬 것이오. 명심하시오. 당시은 나를 당신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걸. 나는 당신보다 키가 크고, 관절이 훨씬 더 유연하오. 하지만 당신과 대적할 마음은 없소.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니 당신이 내게 빚진 책임만 다해준다면, 나의 본래 주인이자 왕인 당신 앞에선 부드럽고 온순해지겠소. 아아, 프랑켄슈타인, 다른 사람에겐 공정한 태도를 보이면서 어찌 나만을 짓밟으려 하는 거요. 오히려 누구보다도 내게 당신의 정의와 자비와 애정을 쏟아야 할 텐데 말이오. 명심하시오. 난 당신의 피조물이란 걸. 나는 당신의 아담이건만 아무런 죄도 없이 당신에 의해 기쁨에서 쫓겨나 타락한 천사가 되었소. 어디를 보든 행복뿐인데, 나만 혼자 영원히 그 행복에서 쫓겨났소. 나는 인정 많고 선량했건만,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소. (126)

어떻게 당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아무리 애원해도 당신은 자신의 피조물에게, 당신의 친절과 동정을 애원하는 피조물에게 호의적인 눈길 한번 주지 않겠다는 것이오? 프랑켄슈타인, 부디 내 말을 믿으시오. 나도 전에는 선량하게 살았소. 내 영혼은 사랑과 인간애로 빛났소. 하지만 이제 나는 혼자, 가련하게 혼자가 아니오? 내 창조자인 당신까지도 나를 혐오하는데 내게 빚진 게 없는 당신의 주변 사람들한테야 내가 무얼 기대할 수 있겠소? 그들은 나를 경멸하고 증오하오. 내겐 인적 없는 산과 황량한 빙하만이 피난처요. 나는 이곳에서 많은 날들을 방랑했소. 내가 유일하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얼음 동굴이야말로 내 집이오. 그곳에서만큼은 나를 싫어하는 인간을 볼 일이 없소. 난 저 황량한 하늘을 반기오. 그건 저 하늘이 당신과 같은 인간들보다 내게 더 친절하기 때문이오. 많은 인간들이 내 존재를 알았다면 당신처럼 나를 경멸하며 해치려고 무기를 들었을 거요. 나를 그토록 증오하는 인간들을 내가 어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소? 나는 적들과 손잡지는 않겠소. 내가 비참하면 적들도 내 비참함을 느끼게 될 거요. 그렇지만, 내 비참함을 보상해주는 일과 당신에겐 너무나 참담함으로 남을 뿐인 불행에서, 당신과 당신의 가족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 삼켜버릴 불행에서 모두를 구하는 일은 당신의 손에 달렸소. (127쪽)

 

 빅터는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여자 괴물을 만들기 위한 실험에 착수한다. 하지만 자신이 또 다른 악마를 만들고 있다는 우려와 걱정이 마음 속에서 다시금 싹트기 시작했고, 결국 괴물과의 약속을 파기하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그의 결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피조물이 괴물이라는 사실에 충격과 공포를 경험한 그로서는 괴물이 한 쌍이 되어 자손을 낳고 번창하게 된다면 인간에게 그보다 끔찍한 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택은 서로에게 최악의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괴물의 배우자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포기함과 동시에 여전히 괴물에 대한 혐오심을 표출했기 때문이다. , 어떤 방식으로든 창조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생명을 얻은 저주스런 날이여!” 나는 괴로움에 소리쳤소. “저주받을 창조자!” 왜 당신은 스스로도 역겨워 고개를 돌릴 만큼 소름끼치는 괴물을 만들었는가? 신은 가엾게 여겨, 인간을 자신의 형상을 본떠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만들었건만, 내 모습은 추악한 당신의 모습이구나. 그런 당신의 모습을 빼닮았기에 더욱 소름끼친다. 사탄에게는 칭찬해주고 용기를 줄 친구, 동료 악마들이라도 있지만, 나는 외톨이고 증오의 대상이로다. (168쪽)

노예 놈아, 예전에 그토록 설명해주었건만, 네 놈은 나의 정중한 예의를 받을 가치가 없는 놈이라는 걸 스스로 입증하는구나. 내가 가진 힘을 명심해라. 지금 네 놈은 스스로 비참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네 놈이 새날이 밝아오는 것조차 싫어할 만큼 더욱더 비참하게 만들어줄 수 있어. 네 놈이 나를 만들었지만 네 놈의 주인은 나야. 그러니 복종해!(220쪽)

 

 괴물과의 약속을 어긴 빅터의 삶은 철저하게 망가지고 좌절과 절망만이 남게 된다. 괴물은 빅터의 동생인 윌리엄, 죽마고우인 클레르발, 아내였던 엘리자베스를 차례로 살해한다. 그 과정에서 충격을 받은 빅터의 아버지 역시 죽고 만다. 피조물은 드디어 악마가 된 것이다. 빅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살해했고, 자신의 삶이 그러하듯 빅터의 삶에서 행복이라는 요소를 지워버린다. 하지만 빅터 주변 인물들의 죽음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그 역시 자신의 동료, 가족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약속을 파기했고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른 것이다.

 

 

 

3.     괴물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다.

 

 글의 서두에서 괴물의 이름을 프랑켄슈타인으로 알려진 것은 잘못된 정보라는 점을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소설을 직접적으로 접하지 않고서도 본질을 꿰뚫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진짜 괴물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피조물은 창조주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아담이 그러했듯이 자신을 닮은 배우자를 원했을 뿐이다. 친구, 가족을 원했던 것이다.

 

내 친구와 친척들은 어디 있을까? 내겐 어린 시절을 지켜보았던 아버지도, 웃음과 애정 어린 손길로 축복해준 어머니도 없었소. 아니 설사 있었다고 해도 나의 모든 과거는 지금 내 눈에는 하나의 얼룩,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공백이었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 전의 내 모습은 지금과 똑같이 큰 키와 큰 체구를 지니고 있었소. 나는 나를 닮거나 나와 친교를 맺으려 했던 존재를 본 적이 없었소.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이 의문이 다시 뇌리를 스쳤지만 대답으로 신음 소리만 나올 뿐이었소.(156쪽)

내게는 의지할 사람도, 친분이 있는 사람도 없었소. 그러니 나는 언제든 자유로이 떠날 수 있었소그렇게 내 존재가 없어진다 해도 슬퍼할 사람은 없었소. 내 생김새는 소름이 끼쳤고 체구는 거대했소. 그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떤 놈일까? 어떻게 태어난 것일까?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165쪽)

 

 빅터에게는 실제로 창조주와 비슷한 능력이 있었다. 시체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피조물의 요구를 거절하고, 피조물이 괴물로 변화하게끔 만든다. 피조물의 존재를 부정하고 혐오함으로써 창조주인 자신 역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친구, 가족들과의 행복한 추억은 먼 과거의 기억에 불과했고 오직 서로를 파괴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된다. 그릇된 욕망은 서로를 더욱 추악한 괴물로 변모하게끔 한다. 뿐만 아니라 창조주 빅터로부터 버림받은 괴물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인간에게 베풀기도 했다. 그렇기에 살인이 쉽지 않았고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살인이 거듭되고,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슬픔과 절망 중 자신의 것이 가장 심한 고통이라고 색안경을 끼는 순간 살인에서 희열을 느끼는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말미에 이르면 누가 괴물이었는지 우리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빅터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괴물을 죽이지 못했음을 한스러워했고, 자신을 돌봐준 월튼에게 괴물을 죽여달라고 유언을 남기기도 한다.  

 

이제 숨이 끊어질 때에야 끝나게 될 나의 방랑이 시작되었다. 나는 지구의 상당한 영역을 횡단했고, 여행자들이 사막과 미개한 땅을 여행하며 부딪히게 마련인 온갖 역경을 경험했다. 정말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모래 벌판에 드러누워 죽기만을 간절히 빌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복수심이 내 생명의 밧줄이 되어주었다. 나는 내 원수를 살려두고 먼저 죽을 수는 없었다.(269쪽)

 

 빅터는 끝내 괴물을 죽이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빅터의 죽음에 괴물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빅터가 끝없는 고통을 겪지 않고 죽어버린 것에 대한 한탄과 아쉬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삶의 끝자락에서 본래 인간이었던 존재는 증오와 혐오를 가득 안고 죽어갔지만, 인간들이 괴물이라고 비난한 존재는 오히려 삶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를 죽인 것으로 내 죄악은 이제 끝이로구나! 계속된 나의 비참한 삶도 이제 종말 앞에 다가서 있구나! , 프랑켄슈타인! 관대하고 헌신적인 존재여! 이제 와서 당신에게 용서해달라고 간청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임으로써 당신을 완전히 파멸시켜버린 나를. 아아! 그대의 몸은 싸늘하고 그대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구나.(295쪽)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혐오하는 대상들은 과연 그런 대우를 받아야만 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혐오의 시작은 다르다는 이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과연 우리는 스스로 완전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존재인가?

인간들이 한낱 괴물이라고 치부한 존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토록 강하고 고결하고 훌륭한 인간이 그렇게 사악하고 비열하단 말인가? 인간은 어떤 때는 순전히 악의 근원에서 태어난 자식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고귀하고 신과 같은 존재로 보이기도 했소. (1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