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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평]표백 - 장강명

JH.JUSTDOIT 2018. 11. 30. 11:39

< 표백 > - 장강명

 

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소설 표백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내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20대 대학생들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이룰 수 있는 업적은 없다고 생각하는 표백 세대의 선구자들이었다. 이 소설을 통해 표백 세대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지만, 필자와 주변 친구들은 항상 우리가 표백 세대임을 운운하고 있었기에 소설은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저자는 표백 세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새로운 담론을 제기할 수조차 없는 환경은 우리 세대의 가치관에도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표백 세대의 등장이다. 이 세대에게는 실질적으로 어떤 사상도 완전히 새롭지 않으며, 사회가 부모나 교사를 통해 전달하는 지배 사상에 의문을 갖거나 다른 생각에 빠지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그런 시도는 기껏 잘돼봤자 기존 지배 사상이 얼마나 심오하고 빈틈없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효과만 낳는다.

이들에게 지배 사상은 큰 틀에서 항상 옳으며,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개인마다 과정과 깊이가 다를 수는 있으나 결론은 언제나 같다. 이들은 지배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따라서 실제 삶에서 온갖 종류의 불편함과 부당함을 겪어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개인이나 작은 이익집단 단위를 넘어서지 못하게 되며, 세계는 사상적으로 완전무결한 상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표백 과정이다. 아무도 더 나은 시스템을 떠올리지 못한다. 거대한 흰색 세계는 모든 빛을 흡수하며 무결점 상태를 유지한다.(192)

 

필자는 로스쿨과 고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항상 의문부호를 품고 있었다. 도대체 왜 모두가 몇 년씩 같은 공부에 죽도록 달려들어야 하며, 그렇게 변호사가 되고 5급 공무원이 된다고 한들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주변 친구들은 말한다. 로스쿨에 가서 성공하면 대형 로펌에 들어가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으며, 고위 공무원이 되면 권력을 누릴 수 있고 죽을 때까지 안정적인 삶이 보장된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우리가 말하는 행복인가? 대형 로펌에 들어가 억대의 연봉을 받고, 고위 공무원이 되어 권력을 누리는 것? 죽을 둥 살 둥 일만 하면서 돈을 많이 벌고 권력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위대한 일을 할 기회를 박탈당한 세대는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출세나 개인적인 성공과 같은 보다 작은 성취에 매달리게 된다. 그런데 완성된 사회는 개인적인 성공에 대해 사실상 단 하나의 평가 기준만 지니고 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와 수정자본주의의 결합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결과다. 자유민주주의는 교리에 따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근본적으로 우월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가치 면에서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수정자본주의는 시장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평가 척도 한 가지만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 세대의 젊은이는 부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더라도 자신의 능력과 야망을 증명하려면 돈을 버는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 외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 가치를 주장할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나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느냐를 놓고 벌이는 시합에서도 표백 세대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완성된 사회는 가능성이 그만큼 고갈된 사회이기 때문에, 부를 창출하는 능력에서도 성숙한 단계에 있다. 닷컴 열풍, 부동산 시장 활황과 같은 국지적인 성장은 때때로 가능하지만 산업화 초〮충반에 볼 수 있었던 경제 전반에 걸친 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완성된 사회의 경제성장률은 이론적으로 0퍼센트에 가까워야 한다.

즉 표백 세대들은 아주 적은 양의 부를 차지하기 위해 이전 세대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경쟁을 치러야 하며, 그들에게 열린 가능성은 사회가 완성되기 전 패기 있는 구성원들이 기대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아주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가장 똑똑하다는 젊은이들조차 엘리트 조직의 끄트머리가 되기 위해 몇 년을 골방에 처박혀야 하고, 그런 노력이 결실을 얻은 뒤에도 조직의 말단에서 다시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표백 세대는 같은 세대뿐 아니라 이미 사회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성세대들과도 경쟁해야 하는데, 사회 각 분야가 고도로 발전해 있고 표백 세대들이 가진 자원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불리한 게임이다. 분배 방식이라는 게임의 규칙조차 기성세대가 정한 것을 따라야 한다. (196)

 

법조인 혹은 고위 공무원이 되어 우리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표백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만의 적응 방법을 도출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는 그들이 도출한 방법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실패가 두려워 도망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연(재키)’처럼 위대한 자살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모두에게 필자는 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다시금 돌아보았다. , 명예, 권력, 위대한 죽음도 아닌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더 작게는 왜 공부를 시작했고,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기를 희망했었는지 되돌아 보았다. 필자는 어렸을 적부터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었다.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음에도 누구보다 빨리 산수를 떼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상위권 성적을 가지고 졸업했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전교1등도 여러 번 했었다. 과정은 언제나 고단하고 길었지만, 결실의 달콤함은 너무나 짧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공부를 했다. 3 수험생 때는 공부를 위해 인생의 동반자라 여겨왔던 축구를 그만두기도 했다. 그렇게 서울에 있는 명문대를 입학할 수 있었다. 역시나 입학의 달콤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왜 공부를 했고, 왜 계속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할 수가 없었다. 답할 수 없었다기 보다는 답을 너무나 명확히 알았기에 회피했다는 편이 정확하다. 소설 속 휘영(소크라테스)’처럼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공부만 잘하고 다른 재능이 없는 놈이 공부마저 실패해 패배자로 낙인 찍히고 싶지 않았다. 당시에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내면의 눈보다는 남들의 시선이 더욱 중요했다. 속은 썩어 문드러지더라도 남들에게는 화려하고 행복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과시하고 싶었다.  

 

난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었어. 선생들도 부모님도 모두 내가 서울대에 갈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수능 성적이 너무 시원찮게 나온 거야. 2지망으로 우리 학교에 합격했는데 주변에서는 내가 재수를 할 걸로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재수를 하지 않았지. 1년 더 공부해야 한다는 게 두려웠거든. 재수 학원에 가긴 했는데 그 건물 전체에 어린 패배의 기운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

 나는 패배자가 되는 게 너무 무서웠고, 지금도 두려워. 내가 받은 교육이라고는 어떻게 하면 패배하지 않느냐에 대한 것뿐이었지. 그래서 승리도 하지 않고 패배도 하지 않는 안전한 방법을 익히고 그대로 살고 있어. 그런데 이게 뭐야?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학벌 콤플렉스가 있다니.”(36.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의 방식을 취해야 하는가? 버나드 맬러머드는 인간의 가치 하락은 인간의 하등의 항의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긴다고 말했다. 우리도 세연, 병권, 윤영, 선우처럼 자살을 통해 기성사회에 대한 비판과 반항 정신을 보여야 하는가? 필자는 세연의 주장에 철저히 반대한다. 숭고한 자살을 통한 사회에 대한 비판은 하나의 이 될 수도 있지만, ‘정답은 아니다. 일종의 진공과 같은 표백상태를 칠하기 위한 새로운 물감과 붓을 찾아야 한다. 그 임무는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자살을 통한 반항은 일시적인 충격을 주는 것에 불과하며, 새로운 답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젊은이들이 자살은 한다고 해서 기성사회가 반성하고 새로운 답을 이끌어낼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설령 기성사회 내에서 변혁의 움직임이 벌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또 다른 기성사회로의 전환일 뿐이다. 이제는 우리가 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78. 재키)

 우리 사회에 모순이 쌓이지 않는다는 세연의 주장에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힘은 이제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 시대에 태풍은 곧 몇 번 들이치리라 생각한다. 그때 그 에너지를 이용하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많은 일을. 그건 그 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332. 적그리스도)